산 조르디 축제는 매년 바르셀로나에서 연인들이 책과 장미를 주고받는 전통 문학 축제로, 2014년부터는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서도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 Sant Jordi NYC 축제는 4월 19일부터 26일까지 디지털상으로 진행되는데 저는 김보영 작가님, 소피 보우만 번역가님과 함께 초청받아 서로의 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김보영 작가님의 영미권 데뷔작 I’m Waiting for You: And Other Stories를 구성하는 작품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저 이승의 선지자> <그 하나의 생에 대하여> <당신에게 가고 있어> 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책이 번역·출간되기까지의 과정도 돌이켜보았습니다. 김보영 작가님의 한국 팬분들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 영상 내용을 한국어로 옮겨 올립니다. (작가님이 한국어로 답하신 부분은 직접 글로 받아 적어 보내주셨어요).
저희 영상은 1:29:53부터 시작합니다.
올해 축제에 참여하는 다른 한국 작가와 번역가로는 박상영 작가님-안톤 허 번역가님, 이소호 시인님-소제 번역가님, 하성란 작가님-자넷 홍 번역가님이 있는데, 정말 한국문학 맛집입니다. 1:00:12-2:29:31 에서 보실 수 있어요.
‘시공간을 건넌 편지 : 김보영 작가와 소피 보우만, 류승경 번역가의 대담’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소피 보우만님과 함께 김보영 작가님의 I’m Waiting for You: And Other Stories를 번역한 류승경이라고 합니다. 김보영 작가님은 과학과 신화, 종교와 윤리를 가로지르며 늘 소수자를 중심으로 두는 소설을 집필해왔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정말 멋진 한국 SF 작가입니다. 웹툰, 게임 시나리오 등도 집필했으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시나리오 자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김보영의 소설은 이미 그 자체로 숨막히게 아름다운 한 편의 영화”라고도 했죠.
이 책은 영어로 번역된 김보영 작가님의 첫 선집으로 하퍼 보이저에서 며칠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두 쌍의 이야기로 구성된 책입니다. 소피 보우만님이 번역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당신에게 가고 있어>는 은하계의 양끝에서 출발해 지구에 동시에 도착하여 결혼식을 올리려는 두 연인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점에 도착해버리고 자꾸만 엇갈리는데, 이들은 우주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 시간으로 환산하면 몇 백 년이 흐르고 말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남자 주인공이 약혼자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고 속편은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또 희망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입니다.
다른 한 쌍의 이야기는 제가 번역한 <저 이승의 선지자>와 <그 하나의 생에 대하여>로, 저승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입니다. 여기서는 ‘선지자’라고 불리는 불멸의 존재들이 일종의 학교를 세우듯이 지구를 만듭니다. 인간과 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로 지구에 환생해 한 생을 살 때마다 값진 배움을 얻고자 하죠. 선지자는 크기가 천체 만하기 때문에 환생을 하려면 훨씬 작은 개체들로 분열해야 합니다. 이것을 ‘분리’라고 부르죠. 죽고 나서 저승으로 돌아오면 다시 ‘합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만’이라는 한 선지자가 지구에서의 삶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오직 그것만이 진짜 현실이라고 믿게 됩니다. 아만은 분리된 상태를 유지해서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고유한 인격이란 것은 없으며 우주 만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주인공 ‘나반’은 이 두 이념 사이에 갈등하며 타자의 의미, 사랑과 공감의 본질을 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어마무시한 세계관이죠.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메세지를 담은, 이토록 유일한 세계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소피님과 저는 각자의 번역에 대하여 김보영 작가님과 영상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 책과 어울리는 형식인 듯 해서요. <저 이승의 선지자>와 <그 하나의 생에 대하여>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았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당신에게 가고 있어>로 마쳤습니다.
2021년 3월 22일 / 승경
안녕하세요 김보영 작가님,
작가님도, 고양이들도 잘 지내시죠?
우리 책 작업할 때는 보통 메일을 주고 받다가 이렇게 영상으로 대화할 수 있어서 좋네요. 제 첫 번째 질문은요, 작가님의 많은 작품 중에서 어떻게 이 두 쌍의 이야기가 한 권으로 묶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021년 3월 23일 / 보영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국 작가 김보영입니다. 승경씨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실은 질문해 주신 부분을 저도 잘 몰라서 에이전시에 문의해봤습니다. 에이전시 말에 의하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이미 번역 판본이 존재를 했어요. 소피 보우만씨가 번역을 하셨고 그것이 완성도가 높았고 대중성이 있다고 판단을 해서, 또 속편이 예정되어 있다는 말에 하퍼에서 선택을 했고, <저 이승의 선지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죠. 이 작품은 서구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한국인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한 SF 라는 생각에 선택을 했고 이 작품을 합치니까 한 권 분량의 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녀석이 제가 키우는 고양이에요. 여기도 한 마리 있네요. 여기도요.
2021년 3월 24일 / 승경
와, 첫번째 녀석이 그 유명한 영보인가요? 고양이 식구들이 몇 마리세요? 냥이들이 스포트라이트를 완전히 빼앗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래도 좋으니 틈틈이 더 보여주세요!
우리 책의 기원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소피님이 근사하게 번역해 주신 작품과 제가 번역한 작품은 톤과 세계관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죠. 하지만 둘 다 스케일이 아주 큰 러브스토리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에서는 서로 함께 하기 위해 은하계를 수 광년에 걸쳐 여행하는 연인이 있고, <저 이승의 선지자>에서는 나반과 아만이라는 불멸의 존재들이 수 천 년 동안 지구로 환생해 수많은 생에서 서로를 꾸준히 찾고요. 굉장히 로맨틱한 것 같아요. 작가님이 보시기에 러브스토리로서의 <저 이승의 선지자>는 어떤 것 같으세요?
2021년 3월 24일 / 보영
아 어려운 질문이네요. 예, 우주적인 사랑 이야기로 볼 수 있으려나요. 이 소설의 세계관은, 우리가 전부 하나의 생명체인데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가 죽어서 저승에 가면 그 기억을 떠올리는 세계입니다.
이 소설에서 나반은 아만이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지요. 하지만 아만은 그렇지가 않아요. 나반과 자신이 구별된 존재라고 생각하지요. 이 생각은 저승에서는 아주 이상한 생각인 거죠.
그래서 나반은 세상의 모든 문제가 아만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아만과 하나가 되어서, 원래대로 하나가 되어서 모든 것을 되돌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나반을 보면, 확실하게 아만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나반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만은 자기 자신일 뿐이니까요.
그랬다가 소설 후반부에서 나반이 아만처럼 분리가 되고, 아만과 ‘다른’ 존재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을 깨닫게 되지요. 자신이 아만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을. 또 자기가 아만에게 많은 잘못을 했다는 것도 한순간에 깨닫게 되지요. 사실 나반은 우주적인 존재고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개별적인 존재가 되기 전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거죠.
사실 나반과 아만의 갈등은 우리가 사랑을 할 때 흔히 일어나는 갈등이라고도 생각해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과 내가 구분되지 않고 그 사람이 마치 나인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무한히 희생적이 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무한히 잔인해지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면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존재고,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그 생각에 너무 빠지게 되면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닌 것이겠지요.
2021년 3월 24일 / 승경
선지자들이 아무런 경계를 정해놓지 않을 때 가할 수 있는 폭력성에 놀랐어요. 가장 극단적인 예가 도솔천이죠.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2013년 발표하셨던 원래 버전에는 도솔천이 아예 등장하지 않더라고요?! 개정판에는 아주 비중이 큰 캐릭터인데도 말이죠.
2021년 3월 26일 / 보영
이렇게 대화하니까 진짜 재밌네요.
네, 원래 저 이승의 선지자는 더 짧은 중편이었어요. 그런데 (한국) 출판사에서 경장편으로 개작을 해보자고 하셔서 이야기를 더 늘리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이전의 나’라고 과거의 이야기가 들어가고 ‘그 후의 이야기’ 세 에피소드가 추가되었어요. 그리고 인물이 하나 더 추가가 되었는데, 그게 도솔천이었지요. 사실 원래 이야기에서는 나반과 아만만 서로 싸웠고, 아만이 분리 편이었고 나반이 합일 편이었는데, 결국 아만이 적이 되면서 합일이 더 좋은 것이라는 느낌으로 (소설이) 결론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까 그것은 이야기의 구조를 너무 단순하게 하는 것 같아서, 합일 편에서 나반보다 훨씬 더 합일을 강하게 주장하는 다른 적이 하나 더 있어서 나반이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편이 더 이야기를 풍요롭게 할 것 같았기에 도솔천이라는 존재가 추가가 된 거죠.
2021년 3월 27일 / 승경
답변 감사해요. 거기는 날이 참 좋아보여요. 혹시 강원도 어딘가에 계신 건가요? 여기는 보시다시피 바람도 구름도 많습니다. 제 다음 질문은 젠더에 관한 거예요. 젠더는 작가님이 작품과 세계관을 짜는 데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저 이승의 선지자>와 <그 하나의 생에 대하여>를 쓰실 때 젠더 관련 어떤 고민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021년 3월 28일 / 보영
네 여기는 강원도고요. 저는 계속 저희 집에서 찍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마스크를 벗은 것이 아니에요. 날이 많이 춥기 때문에 들어가서 찍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왔습니다.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사실 저는 <저 이승의 선지자>를 쓰면서 젠더를 별로 생각하지 않았어요.(웃음) 재미있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젠더를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으면 뭔가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제가 <저 이승의 선지자>를 쓰면서 젠더를 없앤 이유는 단순하고요. 이 소설의 세계관은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설정을 갖고 있지요. 모든 생명이 하나라면 당연히 생식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성별은 없겠지요.
외국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설명을 좀 드리면, 한국어에는 여성 명사 남성 명사가 없고, 하다 못해 사물이라고 해도 문장이나 단어가 달라지지 않아요.
주체가 여자든 남자든 중성이든 무성이든, 하다못해 사물이라고 해도 문장 구조가 똑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저 이승의 선지자>를 쓸 때도, ‘이 세계에는 성별이 없다’는 선언만 한번 하고, 이후의 이야기는 아무 무리 없이 똑같이 쓸 수 있었지요.
하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번역자 여러분들이 고민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알아요. 실제로 한국어에서는 어슐러 르귄이 <어둠의 왼손>에서 게센인을 he로 부르든 she로 부르든 문장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소설 안에서 그 인물의 성별이 드러나는 장면이 없으면 인물의 성별은 모호한 채로 처리되는 것이 한국 문학이에요.
왜 영문학에는 그런 트릭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No man can kill him”같은 전제가 있을 때, 어디서 여자가 나타나서 “I’m not a man”하며 죽이잖아요. 한국어에서는 그 트릭이 불가능합니다. 그런 형태의 단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사실 모든 캐릭터를 he나 she로 나누라는 말은 저에게 아주 이상한 느낌을 줍니다. 그 사람이 여자나 남자처럼 보인다고 해도 인터섹스일 수도 있고 수술 전 트렌스젠더일 수도 있고 논바이너리일 수도 있고 퀘스쳐너리일 수도 있는데, 그들을 둘로 나누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요.
특히 <저 이승의 선지자>의 주인공처럼 인간도 아니고 불멸의 존재고 신적인 존재에게 성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저에게 훨씬 더 이상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성별을 없앤 것은 아무 의도가 없습니다. 만약에 성별을 넣었다면 의도가 있었겠지요.
그러고보니까 궁금해졌는데, 번역자 선생님들은 한국어에서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가 있을 때, 성별을 어떻게 상상하시나요? 구체적으로 남자나 여자로 떠올리시나요 모호한 채로 남나요?
2021년 3월 29일 / 승경
저도 선지자들에게 성별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불멸이라는 설정의 아주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다만 선지자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특정 젠더를 수행하며 종종 젠더를 바꾸길 좋아하죠. 지구로 윤회할 때 특정 선지자는 특정 젠더를 반복적으로 선택합니다. 이를테면 스핀오프 이야기 중 한 편에서 아만이 대부분의 생에서 여성이기를 택하듯이요. 그래서 저는 작가님이 <저 이승의 선지자>에서 젠더를 그리고, 그리지 않는 방식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단수형 they 를 모든 선지자에 적용하는 것은 제게 아주 해방적인 경험이었는데요. 또 한편으로는 성 역할에 대해 제 안에 내재화된 편견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선지자들의 권위적인 목소리를 남성의 것으로 인식하려는 충동과 계속 싸워야 했습니다. 선지자의 권위는 젠더가 아닌 신성에서 오는데도요. 어렸을 적부터 읽은 판타지 소설들도 (이런 충동에) 한 몫을 했으리란 생각도 들어요. 심지어 탄재를 “him”으로 쓴 적도 몇 번 있어 황급히 수정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껏 제가 번역해온 다른 작품들의 경우, 엑스트라 등장인물의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성별을 상상한 다음 번역 초고에 그들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 표시하고 저자와 확인했습니다. 보통 저자는 제 요청으로 성별을 골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게 불편해졌습니다. 아무리 등장인물 비중이 적고, 작품이 명백한 퀴어소설이 아니더라도요. 제 주위 많은 분들이 they 를 인칭대명사로 쓰고 있는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구속적이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참고로 어슐라 르귄이 1969년 발표한 <어둠의 왼손>에서 양성적인 게센인을 일괄적으로 he 로 지칭하죠. 이후 게센을 배경으로하는 단편의 1975년 개정판에서는 she로 지칭했다가, 1985년 <어둠의 왼손> 극본에서 새로운 인칭대명사 a / un / a’s 를 만들어 쓰고, 1988년 에세이에서 마침내 they 를 썼다고 해요. 르귄이 그렇게 오랜 세월 여러 차례 개작을 거쳐야 했던 반면 한국어 번역에서는 애초에 인칭대명사가 전혀 문제가 안됐을 거라 생각하니 재밌네요.
더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 많지만 정해진 시간이 넘어가고 있어서 작가님과 소피님께 이만 바통 터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좋은 이야기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년 4월 1일 / 소피
안녕하세요 보영 작가님! 제가 너무 어수선해 보이지 않으면 좋겠네요. 몇 주 전에 출산을 했는데 이렇게 피곤해본 적은 처음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영상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너무 기뻐요. 저는 한꺼번에 질문 세 개를 드릴게요. 다음에 언제 이렇게 앉아있을 수 있을지 몰라서요. 꽤 다른 질문들인데요. 첫번째 질문은 제가 번역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당신에게 가고 있어> 집필 사이의 기간에 관한 거예요. 한 3-4년 정도 텀이 있었죠? 속편을 쓰셨을 무렵 이미 실제 주인공 커플이 첫 아이를 얻었다고 하셨는데, 속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구상하고 계셨던 건가요,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구상이 바뀐 건가요?
연관된 질문인데 작가님은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에 끌렸던 점 중 하나가, 두 주인공이 지구를 떠나 있는 동안 세상이 금새 완전히 바뀌죠. 미국이 부도나는 걸 포함해서요. 공교롭게도 제가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가 어떤 ‘오렌지 맨’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였어요. 그래서 작품이 당시 제가 느꼈던 절망과 맞물려 확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제가 미국인은 아니지만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에도, 속편에서도 늙은 선장이 등장하는데, 근래 한국 역사 속 특정 인물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권력에 대한 전반적인 논평으로도 느껴졌어요. 이 부분에 대한 작가님의 영감이 궁금해요.
다음은 번역에 관한 질문이에요. 작가님이 번역도 하셨고, 여러 번역가와도 작업을 하셨는데요. 중국어로도 꽤 번역되신 걸로 알고 있고 여러 명의 한영번역가와도 작업하셨고요. 그런 경험에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관련 에피소드는 있는지, 또는 번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021년 4월 3일 / 보영
출산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에, 몇 가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이를테면 여자가 어디에 있었는가? 에 대해서는 남자편에서 나오지요. 남자가 중간에 이야기하잖아요. “나처럼 작은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무리고, 당신이 만약 여행을 하고 있다면 큰 배를 타고 있을 텐데, 큰 배를 타고 있다면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을 테니까, 우리가 만나는 것은 기적 같은 우연일 것이다.” 또 남자편에서 잠깐 나오고 그 뒷이야기가 안 나오는 캐릭터들이 있었지요. 여객선 선장이라든가, 여자가 탄 배의 AI 선장이라든가, 그들은 여자편에서 나올 예정이었지요.
하지만 여자편을 쓰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어요. 제가 바라는 게 있었거든요. 여자편이 단순히 남자편의 속편이 아니라, 여자편을 먼저 읽어도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여자편은 속편이자 프리퀄인 거죠. 두 작품 중 어느 편을 먼저 보아도 괜찮으면서, 한 작품을 보고 다른 작품을 보았을 때,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이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쓰는 것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소피 보우만씨도 고생을 참 많이 하셨어요. 번역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제 집필이 끝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연재를 하듯이 중간 버전들을 보내드렸지요. 집필과 번역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어요. 더해서 퇴고와 교정이 더 있어서 그 부분을 전부 새로 번역해주셨지요. 정말 수고 많으셨고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해 볼게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사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당신에게 가고 있어>를 읽어보시면, 느낌에는 굉장히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실제로 흐른 시간이 길지는 않아요. 지구가 무너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년 정도고, 남자와 여자가 실제로 보내는 시간이 10년 정도입니다. 물론 지구에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르지만.
제가 이렇게 시간을 짧게 설정한 이유는, 그 당시의 한국 상황과 맞물려 있는데요.
외국 독자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한국은 군사 독재 기간이 아주 길었던 나라입니다. 제가 대학 들어갈 때쯤에 겨우 문민 정권이 들어섰고요. 그런데 이 소설을 쓸 당시에는, 그 군사 독재자들 중에서도 최악에 해당하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무렵이었죠. 지금은 감옥에 계시죠. 탄핵이 되어서 감옥에 계십니다. 그 앞의 대통령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아주 천박한 사업가였어요. 두 대통령이 있던 10년 사이에 저는 우리가 지키려고 애썼던 모든 것들이 실시간으로 무너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소설 같은 데서 보면 문명이 무너지거나 세상이 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길게 잡잖아요. 천 년이나 만 년, 이렇게 잡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좋은 것을 쌓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 천 년에서 만 년이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하루면 족하고, 1년이면 족하고 10년이면 족하다는 것을 제가 그때 체험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소설은 내일 결혼하리라고 생각했던, 그리고 모든 것이 일상적으로 돌아가리라고 믿었던 두 연인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세상이 무너지고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이야기고, 그게 아마 그 소설을 쓸 때의 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의지가 있고, 계속 싸워나갈 의지가 있다면, 기적적으로 그 모든 것이 회복될 수도 있고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던 소설인 것 같아요.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2021년 4월 5일 / 보영
그래서 … 미얀마 시민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저는 오늘 나물을 수확하고 왔고요. 세 번째 질문에 대해 답을 해 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제 작품이 지금 조금씩 해외로 나가고 있는데요. 사실 많은 경우에 번역자와 만나지 못합니다. 번역을 하면서 이렇게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제 작품에 대해 토론해주시고, 자기 작품처럼 오류를 잡아주신 분들은 류승경 번역자님과 소피 보우만씨가 거의 유일합니다.
소피 보우만씨는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작품 토론을 긴 시간 해 주셨고요, 류승경씨도, 이 작품에 시간계산이 나오는데, 모든 숫자를 정말 긴 시간을 들여서 오류를 잡아주셨어요. 하퍼도 상당한 분량의 질문을 저에게 주셨고, 또 오류 체크를 해 주셨는데, ((웃음) 예, 자기한테 말하는 줄 알고) 그 대부분이 합당한 지적이라, 한국판도 그에 맞추어서 개정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사실 편집자도 작가가 보지 못하는 점들을 찾아서, 작품을 수정해주는데, 번역자는 그 몇 배로 작품을 깊이 들여다 봐주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게도 잊지 못할 체험이었습니다.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그 과정에서 비로소 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영보가 지금 제 발밑에 있는데요. 제가 말을 하니까, 자기에게 말하는 줄 알고 왔다갔다 하네요.
2021년 4월 7일 / 소피
안녕하세요 김보영 작가님, 저는 드디어 바깥에 나왔어요! 너무 좋네요. 토론토에는 거의 봄이 온 것 같아요. 답변 감사드려요. 해주신 말씀에 모두 공감하고 특히 천 년이고 만년에 걸쳐 쌓아올렸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이라는 말씀에 솔직히 울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면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듭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더라도 계속 노력하고 현재 우리 곁에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작가님과 작업한 것은 멋진 경험이었어요. 작가를 위해 번역가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끔 해주셨어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승경님과 작업하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승경님 안녕하세요! 싱가포르에서 잘 지내시는 모습 보기 좋아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서로의 번역을 꿰고 있을 만큼의 협업과 우정, 참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이렇게 함께 작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두 분 사랑합니다! 안녕!
2021년 4월 9일 / 보영
저는 계속 집입니다.
소피 보우만씨 류승경씨 정말로 감사드리고요. 그린북 에이전시에도 감사드립니다. 제 책의 출간이기도 하지만 두분의 번역작의 출간이기도 하지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소개드리면, 이 책의 가운데에 있는 <저 이승의 선지자>는 동양신화와 전설이 많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 외국 독자분들을 위한 용어정리가 책 뒤에 있습니다. 먼저 읽어보시고 책을 보시면 좀더 이해하기 편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2021년 4월 9일 / 승경
이 프로젝트는 제게 언제나 격렬하고 열정적인 협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소피님, 함께 작업해서 너무 좋았어요. 소피님을 보며 좋은 공역자, 좋은 친구가 되는 방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김보영 작가님, 작가님과 작가님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를 연결해주었어요. 감사합니다. 두 분 모두의 작업들에 장수와 번영을 빕니다!